[정진영 칼럼] ‘심리적 계약’의 힘

심리적 계약이란 용어가 있다.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였던 크리스 아지리스가 1960년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조직에 대해 구성원이 갖는 주관적 믿음을 일컫는 말이다. 실체가 있는 명문화된 계약이 아니라 ‘조직이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기대치다. 경영 환경이 ‘거래적 계약’보다 ‘관계적 계약’을 중시하는 추세여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심리적 계약은 조직을 위한 충성심, 신뢰, 직무몰입도, 근로의욕 제고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실증과 논문으로 이미 확인됐다. 구글, 애플, 이베이, IBM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쓰는 까닭이다. 555m 초고층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토목설계를 맡은 세계적 엔지니어링 업체인 영국의 에이럽(Arub)은 심리적 계약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경영진은 정기적인 조사를 통해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즉시 개선책을 마련한다. 그 결과는 바로 이사회와 사원회의 등에 보고된다고 한다.

구성원이 가장 심각하게 심리적 계약 위반을 느끼는 경우는 인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여길 때고 이어 복지 축소, 불합리한 관행, 상사의 횡포, 경직된 분위기, 부정부패 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내 굴지의 모 전자 대기업은 최근 몇 년간 죽을 쑤고 있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신제품은 경쟁사에 늘 밀린다.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드는 부진의 이유는 하나다. CEO가 그룹 회장 비서실 출신이란 점이다. 비서실에서 온 것이 문제가 아니라 IT 비전문가인데다 위계를 강조하는 문화에 젖었던 사람이 부임하다보니 수직적인 사내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는 유연성이 생명인 업계 특성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비합리적 인사가 경영 실패로 이어진 사례로 꼽는다.

작은 인터넷 언론사를 경영하는 후배가 있다. 이 분야는 정글이다.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다반사인 까닭에 죽기 살기로 경쟁한다. 창업한 지 올해로 4년째인데 작년부터 흑자라고 했다. 기자 포함 직원 30여명에 연간 매출액이 40억원 정도여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말한 경영의 요체는 단순했다. 직원들에게 일할 기분이 나게 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듯하나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을 실천하는 후배의 얘기는 신선했다. 인터넷 언론의 가장 큰 병폐인 기자의 영업사원화를 가능한 한 억제하면서도 대우를 제대로 해준다는 것이다. 이곳의 급여는 어지간한 기존 언론사보다 많다. 본인 질병 치료비용은 회사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등 복지도 괜찮다. 회사 운영의 핵심인 편집국장 연봉이 사장보다 높을 정도로 구성원 중심으로 회사가 굴러가는 것이다. 심리적 계약의 만족도가 최상일 수 밖에 없다. 이직이 일상적인 이 업계에서 창간 이후 회사를 떠난 사람이 1명뿐이라고 했다.

심리적 계약의 효용은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군대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통치기구인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조직이 있는 한 구성원의 기대는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영미는 2011년 동의대 박사논문에서 심리적 계약 위반을 조직의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상당할 정도의 부정적 영향이 초래된다고 했다. 조직에 대한 의무감이 약해져 실망, 좌절, 고통은 물론 노여움, 분노, 쓰라림, 분개의 감정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는 조직과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우병우 사태 등 온갖 불편한 장면을 마주하는 지금 우리가 딱 그런 것 같다.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09238&code=11171392&sid1=col&sid2=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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